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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류인석기념관은
의암류인석기념관은 개항기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하고 해외 독립군기지를 개척한 한말 지도자 의암 류인석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기념관에는 선생의 유물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선생의 항일투쟁역사를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춘천 지역 의병장들의 관련 자료도 소개하고 있다. 의암선생의 구국항쟁 정신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기 위하여 2004년부터 성역화 준공 사업이 완공되었으며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의암류인석독립운동교실’과 ‘의병역사탐험대’를 운영하고 있다.이 곳은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하고 해외 독립군 기지를 개척한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의병장 의암 류인석의 묘역이다. 선생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이다. 1842년(헌종 8) 1월 27일 이곳 남면 가정리에서 태어났으며,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다. 그곳에서 김평묵(金平默)과 류중교(柳重敎)로부터 존화양이(尊華攘夷) 사상을 익혔다.
선생은 을미사변과 단별령을 계기로 1896년 1월 영월 자규루에서 호좌창의대장(湖左倡義大將)에 올라 제천・충주 등 충청도를 중심으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며 친일관료를 처단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친일 관군(官軍)에게 패하여 중국 통화현으로 망명하였다. 그후 고종의 귀국 권유 친서를 받고 일시 귀국하였다가 1898년 재차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00년 의화단 운동을 계기로 청나라에서 귀국해 평안도・황해도・충청도・강원도 곳곳에서 구국운동을 하다가 1908년 부산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였다. 이곳에서 이상설(李相卨)・이범윤(李範允) 등을 만나 함께 항일세력을 결집하고자 하였다. 1909년에는 관일약(貫一約)을 제시하여 의병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같은해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 사건을 지원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릴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 1910년 8월 러시아 재피거우에서 대한13도의군(大韓十三道義軍) 도총재(都摠裁)에 추대되었으며, 같은 달 국권을 빼앗기자 성명회(聲明會)를 조직하고, 회장에 추대되어 해외 각국에 전달하여 일본의 한일병탄의 부당함을 알렸다. 그 후 러시아 연해주, 중국 서간도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1915년 3월 14일 중국 봉천성(현 요령성) 관전현(寬甸縣) 방취구(芳翠溝)에서 서거하였다. 묘소는 평정산(平頂山)에 안장되었다가, 1935년 고향인 춘천시 남면 가정리 현재의 위치로 반장(返葬)하였다.
1962년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2000년 3월 현 묘역이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96년부터 시작된 유적지 조성사업이 2004년에 완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생은 민족 수난 극복의 지도이념으로 위정척사사상(衛正斥邪思想)을 실천한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며 국내와 중국 서간도와 러시아 연해주에서 많은 구국인재를 길러낸 교육자이자 한말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평가받는다.
분 류
: 묘역문화재명
: 춘천의암유인석묘역(春川毅菴柳麟錫墓域)지정번호
: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지 정 일
: 2000년 3월 11일소 재 지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면 충효로 1503제작시기
: 193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