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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의암류인석기념관

의암류인석기념관은 개항기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하고 해외 독립군기지를 개척한 한말 지도자 의암 류인석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기념관에는 선생의 유물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선생의 항일투쟁역사를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춘천 지역 의병장들의 관련 자료도 소개하고 있다. 의암선생의 구국항쟁 정신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기 위하여 2004년부터 성역화 준공 사업이 완공되었으며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의암류인석독립운동교실’과 ‘의병역사탐험대’를 운영하고 있다.
의암류인석 기념관 이미지
  • 선생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이다. 1842(헌종 8)년 이곳 남면 가정리에서 태어났으며,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의 문하에 들어가 배웠다. 선생은 민족 수난 극복의 지도이념으로 위정척사사상(衛正斥邪思想)을 실천한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며 강원, 충청, 황해, 평안도 등과 중국 서간도에서 많은 구국인재를 길러낸 교육자이다.

    선생은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1896년 2월 영월에서 호좌창의대장(湖左倡義大將)에 올라 제천, 충주를 중심으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여 친일관료를 처단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친일 관군(官軍)에게 패하여 강원특별자치도, 평안도 등지로 이동하며 활동하다가 중국 통화현으로 망명하였다. 그 후 광무(고종)황제가 귀국을 권유하는 친서를 받고 일시 귀국하였다가 1898년 재차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00년 중국 청나라 의화단의 봉기로 귀국하여 국내에서 구국활동을 하다가 1908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이상설(李相卨), 이범윤(李範允) 등과 함께 항일세력을 모아 1910년 6월 13도의군(十三道義軍)을 결성하고 도총재(都總裁)로 추대되었으며, 그 해 8월 국권마저 빼앗기자 민의를 모아 성명회(聲明會)를 결성하고 회장에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에도 러시아 연해주, 중국 서간도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1915년 3월 14일 중국 봉천성(현, 遼寧省) 관전현(寬甸縣) 방취구(芳翠溝)에서 향년 74세로 서거하시어 평정산(平頂山)에 안장되었다. 1935년 고향인 춘천시 남면 가정리 현 묘역으로 반장(返葬)되었고, 1962년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2000년 3월에는 현 묘역이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제74호로 지정되었고, 2002년에는 천안 독립기념관 경내에 의암선생의 애국 어록비가 건립되었으며, 2003년 유적지 조성사업으로 새로이 단장되어, 매년(4월 12일) 의암선생의 넋을 위무하는 의암제를 거행하고 있다.

  • 의암류인석 묘역 이미지

    • 분 류

      : 묘역
    • 문화재명

      : 춘천의암유인석묘역(春川毅菴柳麟錫墓域)
    • 지정번호

      :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제74호
    • 지 정 일

      : 2000년 3월 11일
    • 소 재 지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면 충효로 1503
    • 제작시기

      : 1935년